일본의 메이지시대(1868-1912)의 역사는 일본과 외국 나라들과의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었다.법제 구조로부터 라이프스타일과 표준 생활의 변이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의 모든면에서 일본이 외국과의 관계에서 수용된 지극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도쿠가와시대가 메이지유신으로 종결될 때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된 쇄국주의로부터 벗어나 일
본은 서양문화의 수용을 개방하고 많은 사람들이이 변천의 물결에 따르게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이
러한 서양문화 수용의 움직임은 때로는 오랫동안배양된 일본 특유의 문화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동시에 수반하기도 하였다. 만일 이러한 경향이 신중히 확인되지 않으면 일본의 문화와 일본의 정신
이 최종적으로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위기감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고, 이러한 긴
급감에 대한 조치로서 고쿠가쿠인대학이 창설되었다.
고쿠가쿠인대학의 정신은 초대 학장이 제창한 “공식 성명서”에 함축되어 있다. 다카히토황태자,
아리스가와노미야, 그리고 하가 야이치 학장은 그후에 고쿠가쿠인대학의 교가의 작사에 그 고귀한
이상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광대와 청순을 전망으로,
시부야의 언덕에 대학이 서다.
고금의 서적을 탐구하고,
이 땅의 근원을 떠받자.
외국들의 장점을 찾고
우리의 부족함을 보완하자.
어찌 잊으리 근본의 가르침을
근본의 정신을 닦으며.
학문의 장소
그 배움의 갈림길에서,
고쿠가쿠인의 높은 선언
선조들의 길이 여기 우리와 함께,
자손들의 길이 오늘 우리와 함께.
달리 말하자면 고쿠가쿠인대학은, 바탕에 흐르고있는 일본 전통의 문화와 일본의 정신을 탐구하고전수하는 한편, 동시에 다른 나라의 학문의 개발을독창적으로 수용한다는 두가지 사명으로 건학된배움과 가르침의 장소이다.